본문 바로가기 대메뉴 바로가기

People&Collabo

할머니는 다 계획이 있으셨다

작성자전체관리자  조회수2,211 등록일2021-02-24
image.png [370.7 KB]

KRICT 젊은과학자

할머니는

다 계획이 있으셨다

송창은 에너지소재연구센터 박사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끝은 창대하리라.” 갓 개업한 식당과 가게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성경구절입니다.

새롭게 시작하는 이들의 굳은 각오와 희망이 고스란히 느껴져 늘 ‘꼭 이루어지기를’ 함께 기원하게 되는데요.

이 문구는 송창은 박사에게도 의미가 각별합니다.

이름값을 한다는 것

송창은 박사

“창성할 창(昌), 끝 은(垠)이란 이름을 할머니께서 지어주셨습니다. 나름 귀한 손주라고 철학관에 가서 받아오신 이름이지요(웃음). 크면서 제 이름에 왜 ‘끝’이란 단어가 들어갔는지 의아했는데 요즘 보면 정말 이름처럼 살고 있구나 생각을 하곤 합니다. 할머니의 바람대로 끝까지 제대로 이름값을 하며 살아야겠다는 다짐도 하게 되고요.”

송 박사의 고향은 영화 ‘국제시장’으로 유명한 부산 보수동 책방골목입니다. 자갈치시장과 영도다리를 뛰어다니며 어린 시절을 보낸 자신을 “토종 부산 갈매기”라고 소개하는데요. 그는 부산 특유의 시원시원하고 막힘없는 말투로 “공부는 정말 못했다”고도 털어놓습니다. ‘미양미양가’ 일색이었던 그의 성적표가 ‘우수수수수’로 바뀌게 된 건 5학년 때부터였습니다. “평범하고 공부도 못했는데 뭐를 예쁘게 보셨는지 담임선생님께서 많은 관심을 가져주셨어요. 덕분에 더 칭찬을 듣고 싶어 열심히 공부하기 시작했고, 덩달아 자존감도 조금씩 높아졌지요.”

그는 특이하게도 문과로 고교에 입학했습니다. 하지만 집안 사정상 대학은 공대로 진학했는데요. 취업이 잘 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부산해양대 반도체물리공학과에 입학한 그는 첫해부터 큰 좌절을 겪게 됩니다. 미적분학이며 대학물리 같은 기초과목조차 따라잡는 게 쉽지 않았던 것이지요. “초반에는 하면 안 될 게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마음처럼 쉽지가 않았습니다. 현실을 잊으려고 게임에 빠져들면서 자주 수업을 빼먹게 되고 결국 학사경고까지 받았지요. 그래서 한 학기 만에 군대에 갔는데 제대할 때가 다가오니 다시 걱정이 태산이었습니다. 복학이 두려울 정도였습니다.”

수학·과학이 두려웠다

송창은 박사

하지만 “그만두고 우짤낀데? 니 마음 단디해라”는 주변의 격려에 용기를 낸 그는 부질없는 생각에 빠지지 않도록 자신을 혹독하게 몰아붙입니다. 남은 대학 생활 내내 새벽 첫차로 등교해 막차로 귀가하는 다람쥐 쳇바퀴 같은 일상을 계속한 것이지요. 노력은 그를 배신하지 않았습니다. 마의 벽 같던 수학과 과학의 벽도 그의 땀과 눈물에 서서히 문을 열었습니다. 그렇게 일곱 번의 학기가 지난 뒤 맞게 된 졸업식, 그는 과 수석으로 단상에 서게 됩니다.

여세를 몰아 KAIST 대학원에 입학한 송 박사는 석사 과정에서 상변화메모리를 전공했습니다. “사실 이 때도 슬럼프가 찾아왔습니다. 저보다 어리고 머리도 뛰어난 동료 학생들 사이에서 내가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게 과연 뭘까 고민이 많았지요. 그래서 박사 과정에서는 방향을 바꿔 다시 한 번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됐습니다.”

그가 새롭게 눈을 돌린 분야는 차세대 유기태양전지입니다. 반도체 원리가 기반이어서 학부 때 고생하며 쌓은 기초지식도 잘 활용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다시 새롭게 시작하는 것, 기왕이면 해당 분야에서 가장 권위 있는 기관의 문을 두드리고자 마음먹었습니다. 바로 차세대 태양전지를 선도하는 한국화학연구원입니다. 한국유기태양전지학회와 태양광발전학회 회장 을 역임한 화학연 문상진 박사 역시 수시로 메일을 보내며 적극성을 보이는 그를 눈여겨보았습니다.

준비는 짧고 파장은 길다

송창은 박사

“처음에는 KAIST 소속 공동연구생 신분으로 화학연에 합류했습니다. 어떻게든 두드리면 문이 열린다는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에너지소재연구센터 연구진의 도움을 받으며 다시 차근차근 유기태양전지 연구의 기본을 다져나갔지요.” 또 한 번의 고군분투 끝에 마침내 학위를 받은 그는 곧 더 기쁜 소식을 듣게 됩니다. 공동연구생부터 박사후연구원까지 3년 넘게 몸 담아온 화학연에서 정식 연구원으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열린 것입니다.

안정적인 연구환경은 곧 좋은 성과들로 이어졌습니다. 입사 이듬해부터 화학연의 ‘비납계 페로브스카이트’ 연구를 이끌고 있는 송 박사는 최근 속속 발표하고 있는 국제적인 연구 성과들로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덕분에 지난해 KRICT 우수직원상에 이어 올해 과학의 날에는 장관 표창을 수상했는데요. 그는 화학연 연구자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조언을 부탁하는 마지막 질문에 이렇게 두 가지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제 삶을 돌이켜보면서 가장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최선을 다하면 언젠가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이건 제 얘기가 아니라 은사 분 말씀인데요. 우리 인생에서 자신의 직업을 준비하는 기간은 의외로 굉장히 짧다, 하지만 그 결과는 아주 오랫동안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혹시라도 공부에 지치거나 슬럼프에 빠진 분들이 계시다면 다시 훌훌 털고 일어나는 데 도움이 될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