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RICT 나르샤 I
* 나르샤는 ‘날아오르다’라는 뜻의 순우리말입니다.
반복되는 변이와 유행
“국산 백신이 필요해”
코로나19 바이러스의 대유행 속에 현재 전 세계 언론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단어 중 하나가 ‘백신’입니다.
더욱 효능 높고 안전한 백신을 개발하려는 각국의 자존심 대결도 여전히 뜨겁습니다. 미지의 적으로부터
인류 를 지켜온 백신의 역사와 다양한 방식으로 개발되고 있는 코로나19 바이러스 백신들을 살펴봅니다.
인류와 팬데믹
코로나19 바이러스 사태로 활발히 재조명되고 있는 14세기 흑사병은 인류가 경험한 감염병 중 사망자 규모가 가장 컸습니다. 전문가들은 흩어진 기록들을 토대로 최대 1억5천만~2억 명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산하고 있는데요. 당시 세계 인구가 4억 5천만 명 정도였음을 감안하면 무려 삼분의 일이 사라진 것입니다. 흑사병은 도시에 인구가 집중되기 시작한 유럽에서 특히 피해가 컸습니다. 하지만 다른 대륙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아프리카, 중앙아시아, 인도, 중국은 물론 한반도에서도 꽤 많은 흑사병 사망자가 발생했는데요. 역사학자들은 원나라를 통해 유입된 흑사병에 최대 수십 만 명의 고려인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당시 전염병으로 사망했다고 기록된 충목왕 역시 흑사병에 걸린 것이라는 설도 유력합니다. 흑사병 이후에도 인류는 주기적으로 감염병의 고통에 시달렸습니다. 고대 이집트 미라에서도 흔적이 발견될 만큼 오래된 천연두는 15~16세기 대항해 시대에 전 세계로 유행이 번지며 약 5,6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습니다. 유럽의 정복자들을 통해 천연두를 처음 만난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원주민의 삼분의 일이 몰살되기도 하지요.
이이제이, 지피지기
19세기에는 동서양 곳곳에서 결핵에 걸린 많은 이들이 창백한 얼굴로 각혈을 하다 쓰러졌습니다. 환기가 잘 안 되는 밀폐공간에서 잘 퍼진 결핵균은 도시 노동자들은 물론 쇼팽, 카프카, 시인 이상처럼 골방에서 창작활동에 몰두하던 문인과 예술가들도 많이 걸렸습니다. 그래서 한때는 지식인의 질병으로도 알려졌지요. 20세기 초에는 스페인 독감으로 전 세계에서 5천만 명이 희생됐습니다. 하지만 인류는 이 보이지 않는 적들과 투쟁하며 계속해서 새로운 진화의 계기를 마련하곤 했습니다. 바로 ‘백신’이 상징하는 과학기술의 발전입니다. 각종 감염병을 예방하는 백신은 19세기까지 50살 정도에 불과했던 인류의 평균수명이 백세 시대를 바라볼 만큼 늘어나는 데 중요한 공헌을 하게 되는데요.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했던 인류가 마침내 전세 역전에 성공할 수 있게 된 것은 적을 이용해 적을 제압하는 이이제이(以夷制夷)의 지혜 덕분이었습니다. 인류가 잡은 첫 번째 승기는 천연두였습니다. 18세기 영국의사 에드워드 제너는 우유 짜는 농부들이 천연두를 앓지 않는다는 사실을 유심히 관찰한 끝에 최초의 ‘생백신’인 종두법을 발견합니다. 이후 파스퇴르는 독성이 약해진 미생물을 이용하면 비교적 심하지 않게 병을 앓으면서 면역력이 생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병원균을 약하게 만들어 주입하는 ‘약독화 생백신’이 탄생한 것입니다.
백신이 뒤집은 전세
미생물학의 아버지 루이 파스퇴르, 세균학의 아버지 로베르트 코흐 등의 선구자들을 통해 병원균의 존재에 눈을 뜨게 된 과학자들은 이제 약한 미생물뿐만 아니라 죽은 상태의 병원체를 이용하는 ‘사백신’으로도 면역력이 생긴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약독화 생백신은 면역 효과가 뛰어나고 오래 지속되지만 그만큼 면역력이 약한 사람에게는 위험할 수 있었습니다. 반면 사백신은 약독화 생백신보다 면역반응이 약해 여러 번 접종해야 하지만 훨씬 안전한 방식이었습니다. 1901년 제1회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인 에밀 폰 베링이 개발한 디프테리아 백신은 면역력이 생긴 완치자의 혈청을 다른 사람에게 옮겨주는 항독소(항체) 요법입니다. 그간의 능동면역 백신과 다른 ‘수동면역’ 백신이었지요. 생백신과 사백신은 우리 몸이 미생물에 대항하는 면역물질을 스스로 생산하도록 유도하는 ‘능동면역’입니다. 이와 달리 수동면역은 이미 만들어진 면역물질을 인체에 직접 넣어주는 것입니다. 병원균으로 병원균에 대항하던 이이제이 전략에 지피지기(知彼知己)의 지혜, 즉 백신을 만드는 과정에서 우리 몸이 어떤 면역반응을 통해 외부세계의 적들과 어떻게 싸워 이기는지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며 인류가 예방할 수 있는 감염병은 콜레라, 장티푸스, 페스트, 디프테리아, 결핵, 소아마비, 파상풍, 홍역, 풍진, 볼거리, 간염, 신종인플루엔자등으로 크게 늘어났습니다.
전통부터 첨단까지
생명과학의 발달로 백신 기술이 더욱 복잡하게 진화한 현재, 코로나19 바이러스 백신은 크게 4가지 플랫폼 기술을 바탕으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불활화 백신 ▲바이러스벡터 백신 ▲메신저리보핵산 백신 ▲재조합 단백질 백신이 그것입니다. ‘불활화 백신’은 병원균을 죽이거나 독성을 줄여서 백신으로 활용합니다. 가장 오래되고 또 가장 널리 쓰이는 기술이지요. 코로나19 유행 초기 전문가들은 이 전통적인 방식에 큰 기대를 걸지 않았습니다. 위험한 바이러스를 그대로 이용하기 위해서는 생물안전 3등급(BSL 3)에 해당하는 값비싼 생산시설이 필요하기 때문에 단기간에 대량생산해야 하는 코로나19 백신과는 맞지 않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하지만 예상을 깨고 중국 연구진은 이 방식으로 시노벡과 시노팜 백신을 개발했습니다. ‘바이러스벡터 백신’은 안전한 바이러스를 운반체(벡터)로 이용합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항원 유전자를 감기처럼 온순하거나 사람에게 감염되지 않는 바이러스의 표면에 실어 체내에 전달하는 것이지요. 아스트라제네카, 얀센, 스푸트니크V 백신이 여기에 속하는데요. 아스트라제네카는 백신 운반체로 침팬지 감기 아데노바이러스를, 얀센과 스푸트니크V는 인간 감기 아데노바이러스를 이용합니다.
멈추지 않는 백신 개발
세 번째는 현재 코로나19 백신 중 가장 유명한 ‘메신저리보핵산(mRNA)’ 방식입니다. 화이자와 모더나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이 백신은 바이러스의 유전정보가 담긴 mRNA를 이용해 코로나19 바이러스를 둘러싼 스파이크 단백질을 만들어 면역력을 생성하게 되는데요. 백신 후보물질을 신속하게 개발할 수 있고 제조 기간도 짧다는 게 큰 장점입니다. 하지만 주성분인 RNA가 쉽게 분해돼 생산과 보관, 운송이 까다로운 편입니다. 마지막으로 ‘재조합 단백질 백신’은 유전자가 아닌 바이러스의 특정 단백질을 활용해 면역형성을 유도합니다. 실제 바이러스를 이용하는 불활화 백신보다 안전하고 RNA 백신보다 제조가 쉽습니다. 일반 냉장고 온도에서도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입니다. 또한 오랫동안 사용되며 많은 데이터와 노하우가 축적된 까닭에 현재 가장 많은 연구팀과 기업들이 이 플랫폼을 선택해 백신을 개발 중입니다. 노바백스가 대표적입니다. 지난해 12월 영국에서 세계 최초로 백신 접종이 시작된 이후 2021년 6월 현재 전 세계 백신 접종자 수는 16억명을 넘어섰습니다. 하지만 다양한 변이 바이러스의 출현과 지속적인 추가 접종에 대비해 더욱 값싸고 효과 좋은 백신을 찾기 위한 노력이 세계 곳곳에서 여전히 계속되고있습니다. 미국 뉴욕타임스의 백신 트랙커에 따르면 임상시험 중인 전 세계의 백신은 모두 100여 개. 국내에서도 10종의 백신 후보물질에 대한 임상시험이 진행되고 있는데요. 화학연이 기술이전한 신규 백신 후보물질 역시 임상시험에 돌입해 국산 백신 개발에 대한 기대감을 더욱 높이고 있습니다.